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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탕 식빵 이야기

길버트리 2013. 5. 7. 23:33

 

 

 

오늘 하루 페이스북에 끄적대었던, 무설탕 식빵 이야기를 여기 옮김.

 

 

 

무설탕 식빵 이야기(1)

 

파리빵집에 무설탕 식빵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날이다.

집에는 며칠 전 아내가 사다놓은 사과쨈이 있는 상태였다.

쨈이란 것은 본디 한 번 버닝할 때 습관적으로 소비해 주지 않으면,

냉장고 문짝에 실려 한 달이고, 열 달이고 그냥 나이를 먹는다.

그러다 어느날 발견하고 '이거 언제 샀지?'하는 순간

찝찝해서 먹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그렇다 이것이 쨈의 비극적이면서도 평범한 일생이다.

나는 그것을 막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날 무설탕 식빵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무설탕 식빵 이야기(2)

 

무설탕 식빵을 살 때, 영수증에 달려나온 응모권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응모를 해 온 나였기에, 이번 기회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광속으로 응모를 했다.

사다 놓은 식빵을 틈틈히 쨈을 발라 먹어치웠고,

며칠 후 무설탕 식빵을 하나 교환할 수 있는 기프티콘이 문자메세지로 날아왔다.

그 날 아내와 함께 퇴근하는 길에 기쁜 마음으로 파리빵집에 들러

기프티콘을 내보인 다음 무설탕 식빵을 한 봉지 더 집에 가져올 수 있었다.

 

 

 

무설탕 식빵 이야기(3)

 

두번째 가져다 놓은 무설탕 식빵도 쨈을 발라 틈틈히 열심히 먹었다.

그 사이 잼이 먼저 동이 났고, 한 조각만 외롭게 남은 채인 것을, 매일 목격한 지 이틀.

오늘 아침.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방식으로 식빵의 절반 부분에 마요네즈를 뿌렸다.

그리고 설탕을 부슬부슬 뿌리고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한 입을 먹고, 두 입째 베어물고 '그래 이맛이야'를 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식빵 옆면으로 귀엽게 피어오른 연한 녹색의 곰팡이들이 보였다.

입에 있던 것을 얼른 뱉고, 남은 빵은 버렸는데,

삼켜버린 한 입때문에 배가 살살아프다. 기분 탓인가?